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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업 복습하다가 생각이 많아져서 한번 주절거려 본다.
결국 이것은 자기 노출과 숨겨진 자아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우선 사진의 모델을 중심으로 설명하겠다. Open self의 경우는 자신과 타인이 모두 알고 있는 자아다. 일반적으로 드러나는 ‘성격’의 개념이라 할 수 있다. Blind self는 자신이 잘 느끼지 못하지만 남들이 잘 알고 있는 자아의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를 많이 봤을 것이다. 예컨대 제임스 헷필드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자신이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남들은 매우 똘끼가 충만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우이다. Hidden self는 자신은 알고 있지만 남들은 알지 못하는 경우를 이야기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해봤는데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동성애자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런 측면에 있어서는 나는 상당히 개방적인 사람이라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동성애를 죄악이나 비정상적인 것으로 보기 보다는 하나의 취향(taste)의 관점으로 생각한다. 우리가 길을 가다가 예쁜 이성을 보면 기분이 좋고 말 한번 걸어보고 싶고, 같이 많은 시간을 나누고 대화를 나누고 싶은 것처럼 그들을 동성을 보면 그러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여기서 도대체 문제될 것이 무엇인가? 그렇지만 내가 아는 녀석들이 갑자기 나에게 커밍아웃을 한다면 빳다질을 하지 않을 거란 보장은 못하겠다. 마지막으로는 가장 묘하고도 어려운 것이 남아있다. Unknown self는 자신도 모르고 타인들도 모르는 자아의 개념이다. 과연 이러한 개념이 존재하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분명 이러한 측면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왜, 그럴때 있잖은가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말이다. 위의 표에서 보여지듯이 화살표 쪽으로 갈수록 자기 노출은 늘어나게 되고 그만큼 회신은 늘어나게 된다. 이건 당연한 이야기다. 내가 남에게 나를 많이 보여줄수록 남도 나에게 마음을 열게 되는 것이다. 그 정보량이 동일하다는 전제는 할 수 없지만 말이다. 가령 수신자가 나에게 연정을 품고 있는 게이라든가-_-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내가 2bit의 정보를 보내면 그는 그 이상의 회신을 줄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는 내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암송해주더라도 돌아오는 대답은 “뭐라고?”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거 참 슬픈 현실이지만 60억 인구 전부가 내 친구고 연인일 수 없듯이 신경 쓸 만한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조금 더 개념화 하여 정리된 것은 표의 짧은 문장들에 잘 나타나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여기서 나는 사람들의 미니홈피 사용 성향과 연관 지어서 요하리 윈도우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봤다. 사람은 자기 노출에 대한 욕구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이외수님의 글쓰기 공중 부양에도 보면 “대부분의 작가들은 자기만족을 위해 글을 쓴다, 많은 사람이 읽어주지 않아도 좋다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전세계인이 내 글을 읽어 줬으면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요즘은 자기 표출의 공간이 없는 경우 돈을 주고 자기 표출을 하러가기도 한다. 이것은 심리 혹은 정신과 상담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렇듯 표출의 욕구를 가지고 있는 인간들은 IT시대에 걸 맞는 노출의 형태를 발전시켜 왔으며 이것은 홈페이지, 블로그, 미니홈피 등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 중에서도 한국 내에서의 대세는 단연 ‘미니홈피’라 보여진다. 블로그나 홈페이지의 경우에는 그 대상층이 매우 폭넓다. 주변의 지인은 물론이고 불특정 다수를 향한 대상 설정을 기초로 한다. 그러지만 미니홈피는 ‘일촌’제도와 비공개 설정을 통해 불특정 다수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방어기재를 엿볼 수 있으며 또한 미니홈피는 기존의 인맥관리에 그 중점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싸이월드는 자신이 찍은 사진, 자신이 고른 음악, 여기저기서 링크를 통해 끌어온 영상, 글등을 올려둠으로써 자신의 성향을 나타내는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일촌제도는 기존에 전제되어 있는 인맥의 유지와 관리를 더욱 원활하게 해준다. 일촌을 맺음으로 인해서 그들은 관계를 다시금 정립하게 된다. 수업이 끝나고, 퇴근을 하고, 술자리가 파한 뒤에도 가상의 공간에서 친구를 다시금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 친구가 집에서 똥을 싸든 엄마랑 싸우든 나는 친구가 임의적으로 설정해둔 이미지들의 총합을 보면서 그를 추억하고 그를 파악하며 그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몰랐던 친구의 측면을 보면서 우리는 친구를 더 좋아할 수도, 아니면 “이 자식 찌질이잖아”하면서 더 싫어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노출에 있어서 사람들은 좀 더 자신의 모습을 멋지게 보이고 싶어 한다. 결국 모델 하단에 위치하고 있는 Hidden self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스크랩’의 형태로 잘 파악할 수 있다. 이 이야기는 한때 인터넷의 논객들을 달구기도 했던 주제로써 “사람들은, 특히 여자들은 왜 싸이에 뭔가 알 수 없는 글들을 미친 듯이 올리는 걸까?”하는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없는 글이라 함은 예컨대 이런 것이다. 외국 여자나 남자가 등장하는 사진에 밑에 글은 이런 것들이 적혀 있다. ‘b형 여자를 사랑하지 마세요’ 아니면 유명한 시나 영화 구절 등이 적혀 있는 글들이 있다. 당시 이 현상에 대한 분석의 흐름은 “뭔가 있어 보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속성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었고 나 역시 이러한 의견에 동의한다. 결국 여기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노출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특성과 또한 있는 그대로 발라당 까진 자신의 모습을 내보이기 두려워하고 있는 인간 특성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쯤 읽으면 이런 생각이 들것이다. “뭐야 이 자식 지가 싸이 안한다고 하는 사람들 까는 거야 뭐야?” 나도 100%로 부정할 수는 없다. 나의 Unknown self적 측면이 발동하여 이렇게 글을 적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뭐 본인도 입대 전에는 싸이에 많은 애착을 가졌었고 일반적인 사용자 범주에 들었었다. 그렇지만 전역을 하고 또 뭐 나름 사는대로 살다보니 사진도 잘 안 찍게 되고 흥미도 줄어버려서 지금은 연락처 및 남 꺼 음탕하게 훔쳐보기의 용도로 전락해버린 현실이긴 하다. 이러한 비평을 함에 있어서 나의 입장은 “너네들은 다 또라이야^^” 이런 게 아니라 뭔가 현상에 대한 분석을 통한 좀 더 건설적인 대안 수립과 자력갱생에의 의지를 가져보고자 하는 것에 있다. 휴대폰 혹은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도 사람들은 잘 살고 있었다. 밤이 깊어 님은 보고 싶은데 볼 길은 없고 안타까운 마음을 누일 곳이 없어서 자결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존재할 가능성을 배재할 수는 없다) 도저히 견디지 못할 상태가 되면 그때는 직접 찾아갔을 것이다. 이러한 것은 피상적이지 않고 직접적이며 구체적인 관계가 당시에는 더 원활하게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친구 싸이에 가서 잘 지내냐고 방명록을 남기고 친구의 셀프 사진에 예쁘다고 꼬리를 다는 것이 아니라 (특히 여자들 싸이에 가보면 셀프 사진에 매우 많은 찬사의 꼬리들이 달려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 중 한명을 골라 파도를 타고 들어가 보면 역시나 그곳 주인의 셀프 사진에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근데 사람들의 시기심이나 자존심등의 우열적 관계에 입각한 본심은 어디로 간 것일까? 무수한 꼬리들은 전부 가상공간의 허구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나는 여기서 본인의 모친인 박재숙 여사의 말로써 정리를 하고자 한다. “여자에게 남자들과 같은 의미의 친구는 없다. 암컷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상태에 돌입한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하며 회포를 풀고 관계를 유지했던 것이다. 방명록으로 우리의 관계가 유지되는 것일까? 직접 만나서 커피 한잔을 하든 담배를 피든 아님 뭐 쭈쭈빠라 쭈쭈아이~의 쭈쭈봉을 먹든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을 보내고 같은 공기를 공유한다는 것은 좀 더 다양한 느낌을 전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인간 커뮤니케이션을 말할 때 이야기되는 Lasswell의 SMCRE모델이나 윌버슈람의 순환적 모델, T.Newcomb의 ABX 모델등의 형태로는 더 이상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형태를 설명하기 힘든 시대로 우리는 돌입하고 있다. 기존의 이론이나 패러다임으로는 우리의 생활을 설명할 수 가 없는 것이다. 앞으로도 이어지는 각종 하이브리드와 컨버전스의 흐름은 우리의 생활을 뒤바꾸어 놓을 것이고 우리는 알게 모르게 변화해 갈 것이다. 전역을 할 때 즈음 우연찮게 중학교 선생님과 연락이 되어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다. 오리 고기집에 가서 엉덩이가 빵빵한 놈으로 주문시킨 다음 차근차근 구워나가면서 선생님과 나눴던 대화는 참으로 감회가 색다른 것이었다. 이제는 서로 술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어 세태를 비판하고 삶의 회한을 이야기하는 위치가 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만남에 있어서 싸이는 촉매제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다.(우연찮은 연락은 전화로 이루어졌었다) 그러지만 “이 사람을 꼭 만나야겠다”라는 생각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싸이가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쓰는 사용자의 적절한 운용능력이 요구된다는 이야기이다. 너무 집착하고 의존하지도 그렇다고 비난하고 무시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에게 필요한 장점만을 사용하면서 자신의 삶에 좀 더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쓸려는 태도가 필요한 것이다. 한번쯤 지난 방명록이나 사진첩을 들춰보면서 만날 사람 목록을 작성하여 그들을 만나고 다니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 대인관계도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모두 외롭고 나약하다. 자신의 다이어리나 사진첩에 이야기들을 해놓고 남들이 봐주고 이해해주길 바라기 보다는 외로운 사람끼리 만나서 서로의 고충을 허심탄회하게 나누어 보는 “현피”가 요구되는 시점인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한잔 잡사? * 현피 : '현실'의 앞 글자인 '현'과 PK(Player Kill)의 앞글자인 'P'의 합성어로 에서 게임, 메신져 등과 같이 웹상에서 벌어지는 일이 실제로 살인, 싸움으로 이어지는 것을 나타내는 신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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